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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홍욱주,
비누의 정석
글 우해미 사진 김규식     2013-11-01

홍욱주의 비누는 투박하다. 현란한 색으로 시선을 끌거나 세련된 향으로 코끝을 흥분시키는 것도 아니다. ‘천연홀릭’. 먼 나라에서 온 물건처럼 그럴듯한 외국어만으로 된 이름을 짓는 대세를 따를 법도 한데, 손수 지어낸 브랜드 이름마저 자신이 만드는 비누만큼이나 꾸밈없다. 아니, 조금은 촌스럽다고 말하는 게 솔직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물건 사이에서 그녀의 투박한 비누를 집어든 건 그 비누가 가장 고집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투박한 물건의 당당한 패기에서 기교보단 ‘정석’을 우직하게 따른 제품일 것 같다는 호기심이 피어올랐고, 예상처럼 비누의 효과는 꽤 놀라웠다. 홍욱주가 만든 ‘때비누’라는 곡물 비누로 힘들이지 않고 온몸의 각질을 말끔하게 걷어낸 경험, 대나무 통 숙성비누로 개기름이 자취를 감춘 보송한 피부를 재발견한 경험은 나를 천연홀릭에 ‘홀릭’하게 만들었다. 비누가 뭐 거기서 거기지. 때만 잘 닦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에게 홍욱주의 비누는 당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비누의 놀라운 재능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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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테라피의 이해에서 출발하다
욕실에 놓아 둔 비누의 물러짐이 싫어서 근 20년간 케이스에 담긴 폼 클렌징 형태의 제품만 보고 써왔던 터라 수제비누든 천연비누든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둘 다 손으로 만든 제품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 인공색소로 온갖 기교를 부린 수제 비누와 투박한 천연비누의 차이점도 모르던 내게 홍욱주와의 만남은 비누의 신세계로 들어서는 것과도 같았다.

“천연홀릭은 천연비누에요. 그러니까 모양과 향을 좋게 하기 위한 인공 요소를 첨가하지 않고, 사용기한을 늘리기 위한 방부제도 넣지 않은 순수 천연 재료로 만든 제품이죠. 천연비누는 반드시 약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자연 숙성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그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탈색이 되고 에센셜 오일의 향도 약간 날아가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비누의 모양이 예쁘게 나올 수 없어요. 에센셜 오일 자체가 방부제 역할을 하니 따로 방부제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고요. 그래서 천연홀릭뿐 아니라 다른 브랜드의 천연비누 생김새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래도 개중에 예뻐 보이려고 로고를 각인하거나 예쁜 모양 몰드에 굳히는 제품들 때문에 천연홀릭이 유독 털털해 보이긴 하지만요.”

최근 핸드메이드 제품에 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면서 덩달아 천연비누를 만드는 생산자 또한 흔해진 것도 사실이다. 손꼽히는 몇몇 핸드메이드 마켓에서 가장 빈번히 마주치는 게 바로 천연비누니까 말이다. 다른 천연비누와 천연홀릭의 차이점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천연비누 혹은 천연로션을 만드는 것은 아로마테라피의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해요. 각각의 에센셜 오일의 특징,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섞였을 때 어떤 증상에 효과적인지 정확히 공부를 해야 질좋은 제품이 나오니까요. 그러니 사실 비누를 만드는 건 그 이후의 일이에요. 핵심은 천연비누와 로션의 재료인 에센셜 오일이니까요.”
아로마테라피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만 2년. 양질의 에센셜 오일을 구분할 줄 알고, 인터넷에 대중적으로 오가는 글에서 오류를 짚어낼 수 있게 될 즈음 비로소 비누를 만들기 시작했다. 얕은 지식으로 만들 바에야 마트에서 파는 공장 비누와 뭐가 다를까 싶었다. 이왕 만들 거 제대로 하고 싶었다.

“유럽의 병원에서는 보조요법으로 아로마테라피 처방이 낯설지 않아요. 한국의 한약처럼 유럽인들은 민간요법의 하나인 아로마테라피를 꽤 중시하는 편이에요. 한약에도 복용법이 있는 것처럼 아로마테라피 역시 전문가에서 처방받고 사용하는 게 중요하죠. 불면증으로 고생할 때 라벤더 오일을 쓰면 좋다고는 들어봤지만 올바른 사용법이나 주의사항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한 두 방울 가습기나 오일램프에 떨어뜨려 향을 맡거나 귀 뒤에 살짝 묻히라는 게 전부잖아요. ‘한 두 방울’, ‘살짝’이라는 지시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특정 한약재가 같은 증상의 사람에게 모두 효과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편적 지식을 일반화하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잘못된 방식으로 만들어진 천연비누를 쓰면 오히려 피부 문제를 유발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바로 홍욱주가 아로마테라피를 진지하게 공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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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게 아닌 다른 것
사실 두 아이의 엄마 홍욱주가 맨 처음 천연 비누를 만들게 된 건 둘째 아이의 아토피 때문이었다. 양약의 힘으로 증상이 개선되지 않아 천연제품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는데, 그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직접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해서 시작한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많이 알면 알수록 먹을 거 없고 쓸 거 없다고 하잖아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덩달아 갈증이 더해지니 전문적으로 배우게 된 거죠.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긁어대 딱지 떨어질 날 없던 딸의 피부가 좋아지면서 천연로션 쪽으로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녀가 천연비누를 사용하는 건 환경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천연비누는 물에 씻겨 내려간 후 24시간 안에 모두 분해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 하나 실천한다고 당장 환경오염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나부터’라는 개념으로 천연제품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게 그녀의 바람이다.

“사실 천연비누를 쓰는 건 불편해요. 수분이 닿으면 일반 비누에 비해 빨리 녹기 때문에 물 빠짐에 신경 써야 하고, 처음 쓰는 사람 중 일부는 눈이 심하게 따갑다고 해요. 비누에 담긴 오일 성분 때문에 실수로 눈에 비누 거품이 들어갔을 때 일반 비누보다 그 따가움이 더 심하거든요. 사실 천연 오일이라 따갑지만 몸에 나쁘지는 않아요. 하지만 비누 거품의 그 참을 수 없는 따가움을 경험한 사람들이 천연제품 사용을 중단한다는 건 너무 아쉬워요.”
수분에 약한 천연비누 때문에 그녀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숙성 틀에 보관해 둔 비누가 공기 중의 수분 때문에 물러질까 걱정돼 때 맞춰 제습기를 틀고, 습한 여름에는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은 기본이다. 상전이 따로 없다. 천연비누의 숙성기간을 생각한다면 그 어떤 수작업의 작업 기간과 노력에 비교해도 쉬운 편은 아니다. 게다가 알고 보면 비누 만드는 게 상상만큼 그리 고상한 취미가 아니다. 천연비누 생산자가 많은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누 만드는 걸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센셜 오일의 사용법도 단순하지 않지만 비누 만드는 재료들 중에는 잘못 다루면 폭발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세심하고 신중한 작업이 필요하다.

“아로마테라피 협회도 많고 교육 과정도 다양하기 때문에 배워야 할 건 산더미이고 자신의 콘셉트를 뚜렷하게 잡지 않으면 흔들리기 십상이에요. 워낙 자료가 방대하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이 맞고 너는 틀리다는 식의 분위기가 만연해 있거든요. 그래서 전 기본에 충실한 천연제품을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던 거고요. 어떻게 보면 고지식하고 답답하겠지만 주변에 흔들리지 말자는 신조 덕분에 지금까지 천연홀릭을 끌고 왔어요. 다행히 지금까지 천연홀릭 비누가 마음에 들지 않다고 하는 분이 한 명도 없다는 제 자랑이자 자부심이에요.”
  • 프로필 사진

    우해미 hola_pincho@naver.com 디자인 월간지 <디자인 네트>, 공연문화 월간지 <씬 플레이빌>, 남성 월간지 <스터프>의 피쳐 에디터로 활동했다. 미술학도였지만 어쩌다 보니 글로 먹고 살게 된 여자. 하지만 제 버릇 남 못 주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태생적으로 아름다운 물건을 사랑하고 본능적으로 디테일에 집착한다. 불행하게도 직접 만드는 물건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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