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소생공단

소생 홈
본문내용 부분

본문

INTERVIEW

박예연,
일상과 물건을
콜드 조인팅하다
글 Zinna 사진 김규식     2014-11-21

“이 세상은 다 콜드 조인팅이에요.”

그녀가 웃었다. 콜드 조인팅이 무언지 몰라 찾아본 후 이제 알게 됐다고 으쓱거리는 내게 그녀는 맞장구를 치며 싱그럽게 웃었다. 콜드 조인팅은 아주 옛날, 인간이 도구를 만들 때부터 사용했던 기법이다. 다양한 재료를 결합할 때 접착제나 용접, 땜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박예연은 두 재료의 구멍을 뚫어 봉을 넣고 양 끝을 망치로 두드리는 제일 간단하고 쉬운 콜드 조인팅 기법을 사용한다. 또한 콜드 조인팅은 물건의 해체가 쉽고 수리가 편하며,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제작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이다. 그리고 그 기법을 실현시키기 위해 을지로 골목 구석구석을 헤매며 재료와 공구를 구입하거나 가공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
"대부분의 작품을 만들 때 저 혼자 모든 것을 가공하진 않아요. 그렇다고 기계가 모든 것을 해주진 않죠. 기계를 다루는 숙련자의 장단점을 잘 알고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 결과물이 바르게 나올 수 있어요."

그렇게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얼까. '재활용과 재사용', 바로 박예연의 물건이 던지는 핵심 화두이다.

-
“저는 재료를 다루는 사람이니까요.”
그녀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일회용 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빵 하나를 사도 비닐에 싸여 있고, 무언가를 먹고 난 자리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보면 잠시 죄책감을 느끼지만 이내 잊어 버린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그녀는 쉽게 먹고 쉽게 버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끝내지 않았다. 박예연은 재료를 다루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일 흔하게 쓰이는 페트(PET)를 가지고 어떻게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도시락 용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면 사먹지 않아도 되고, 쓰레기도 줄일 수 있었다.

“예쁘지 않나요? 그리고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 다음부터는 먹는 행위 자체도 아름다워졌다는 생각을 해요. 야채도 많이 먹게 되고 식습관이 달라졌죠. 그 전까지는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물론 이건 다른 사람한테 강요할 수도, 개인이 시스템을 바꾸기도 쉽지 않은 문제에요. 하지만 제 삶에서 제가 바꿔보면서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으면 당신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하나의 케이스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건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환경이나 가난까지 모두. 그리고 그 시작은 물건을 쓰는 방식과 시각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
“면과 선, 점의 만남이죠.”
그녀가 눈을 반짝거렸다. 리벳이 드러나게 작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재료에 대한 설명부터 조곤조곤 말이 별처럼 쏟아진다. 리벳은 콜드 조인팅으로 결합한 양 끝에 튀어나온 머리 부분으로서, 그녀의 도시락 용기를 보면 페트 면과 스테인리스의 선, 리벳의 점이 만난다. 기계적인 느낌이면서도 정겹다. 무엇보다 박예연은 재료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투명하고 가벼운 페트와 견고하고 색이 변하지 않으며 위생적인 스테인리스, 가볍고 다루기 쉬운 알루미늄, 질기면서 잘 휘어지는 대나무 등 차가운 금속과 따듯한 나무의 느낌을 참 잘도 조합한다.

또한 그녀의 물건은 포크 겸 스푼 겸 나이프, 도마를 가진 브레드 박스, 도마에 수납된 나이프 등 하나의 물건에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이 합쳐져 있다. 마치 맥가이버 칼 같다고나 할까. 이에 대해 박예연은 공간의 활용을 높이면서 물질을 아낄 수 있고, 재미도 있지 않냐며 다시 한 번 눈을 반짝거린다.

“요즘엔 끈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끈 자체가 연결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자 경계가 될 수도 있고, 끊으면 한번에 다 분리가 되잖아요. 그리고 작가 입장에서도 하나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통일된 무언가는 있겠지만, 자꾸 바뀌어야만 살 수 있죠. 물론 제일 중요한 건 바뀌고 안 바뀌는 걸 떠나서 버티는 거에요. 쭉 이어가는 게 제일 어렵거든요.”

-
“재활용과 재사용 둘 다 필요해요.”
그녀는 진지했다. 우리가 쉽게 쓰는 일회용품은 물론 재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그녀는 적은 에너지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재료의 손실에 초점을 맞추면서 싼 재료로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커틀러리를 만들기 위해 레이저 커팅이 끝난 판의 남는 부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생활에서 진짜 꼭 필요로 하는 게 무얼까로 이어진다. 그녀 자신 역시 ‘일회용품을 쓰지 말아야지, 야채만 먹어야지,’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지고 편해졌다. 자신의 물건과 일상을 분리하는 게 더 힘들지 않겠냐며 진지하게 반문했다. 그래서일까. 박예연의 개인전 타이틀은 힘이 들어가 있지 않고 무척 친근했다. Daily Picnic, Ordinary Day라는 제목에서 살가운 일상이 느껴진다.

“물건을 가만히 보면 아침이랑 밤에 보는 게 달라요. 그것은 꼭 일상생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인구는 많은데 어떤 사람은 너무 가난하게 살고,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가졌어요. 하지만 적은 물건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물건을 만드는 것 자체도 최소한 환경에 해가 되지 않게 만들고요.”

-
“이유가 없는 게 너무 많아요.”
그녀가 또박또박 전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그 이유를 담아.

“이유가 없는 게 너무 많은 거 같아서 안타까워요. 선이 휜 것 하나 하나에도 다 이유가 있어야 하고, 재료를 사용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 작업할 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다루는 재료와 선 하나 하나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이유에 대한 고민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니까요.”

물건의 홍수 시대에서 그녀는 작은 조각배를 탄 채 조용히 말을 건넨다. 어디를 가든 똑같은 형태의 물건에 색깔만 바꿔서 쏟아지고, 왜 그렇게 바뀌어야 하는지 이유는 모른 채 그저 사람들에게 팔기 위한 물건들이 범람한다. 볼 때는 혹하고 예뻐 보이지만, 기능에 대한 고민도 떨어지고 형태나 재료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유가 있는 형태가 결국 기능에도 잘 맞는다는 것을 그녀는 보여준다.

“재료든 살아가는 순간이든 소중하게 생각하면 버릴 일도, 함부로 할 일도 없지 않을까요? 만드는 사람 사용하는 사람 모두 소중하게 만들고, 소중하게 사용하고, 소중하게 버리는 것이 곧 지속가능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자급자족의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요. 기업과 사회에 너무 의존해서 살면 불공평한 게 많아지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소비가 너무 과한 시대에 그런 것들을 제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예가의 역할 아닐까요?”

박예연은 곧 유학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어떤 대단한 것을 배워올까라는 기대보다는 그녀의 달라질 또 다른 생각과 방식이 궁금해진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녀가 껍질째 곱게 깎아준 사과를 다 먹고 나니 빈 그릇만 남았다.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일상과 물건을 콜드 조인팅하면서 말이다.

  • 프로필 사진

    Zinna zinnago@gmail.com 고도를 기다리며 글을 쓴다. 고도는 오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글을 쓴다.
    언제부턴가 글이 써지지 않는다. 글은 고도가 되었고, 나는 고도를 기다린다.

    facebook share
본문내용 부분

본문

댓글

PRODU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