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선수가 족구를 잘하면 이상한가요?”
말문이 막혔다. 도자 공예를 전공하고 그릇을 빚는 대신 도자 오브제라는 순수 작품을 왜 만드는지 질문하자 박준상의 대답 아니, 역질문이었다. 순수 예술과 그릇의 경계는 무엇인지, 오브제를 하는 작가가 그릇을 만들어 팔면 안 되는지, 대중들에게 오픈하지 않는 엄숙주의는 깨면 안 되는 것인지 박준상은 내게, 그리고 그 자신에게 물었다. 정릉의 한 길가에 자리 잡은 작업실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차 소리가 아득해졌다.
본문
INTERVIEW
박준상,
물음표를 굽다
글 Zinna
사진 김규식
201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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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의 시작
“한국에서는 공예를 일일이 나눕니다. 분야를 구체적으로 나누고, 범주를 나누고, 세분화하면서 폐쇄적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결국 미술일 뿐인데 말이에요. 그러면서 대중들과는 점점 멀어지죠. 저에게 이건 그저 재료일 뿐이에요.”영화를 만들고 음악을 하며 글을 쓰는 사람 모두 작가인데, 그렇다면 작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요즘 트렌드를 따라야 하는 것일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음표의 시작은 첫 개인전이었다. 졸업 후 박준상의 첫 개인전 오픈식 날, 갤러리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의 어깨도 절로 부풀어 올라갔다. 그런데 둘째 날이 되자 발걸음이 끊겼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길 가던 몇몇이 들렀을 뿐 첫날 방문객 대부분이 도자 공예 전공자나 관계자들이었다는 것, ‘우리만의 파티’였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리고 그 좁은 바닥에서 벗어나 대중과 만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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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깨져요?
첫 개인전 이후 위축되어 있던 그에게 예술의 전당에서 디자이너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하는 디자인 아트 페어 참여 기회가 찾아 왔다.“이거 깨져요?” (깨지죠, 도자인데..)
“조각 아니에요?” (아니요, 도자인데요..)
전시 기간 동안 박준상은 개인전 때의 100배가 넘는 관객을 만났고, 그들은 유약을 바른 건지 안 바른 건지, 몇 도에서 구운 건지 묻지 않았다. 도자 작품을 보고 ‘이거 깨져요?’라고 묻고, 사진 찍고, 느끼고, 반응하는 관객을 만나며 어안이 벙벙해진 건 박준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갤러리가 아니라 페어를 선택하면서 관객들을 붙잡고 물음표를 던졌다. 무엇이 마음에 드는지, 왜 내 작품을 사가는지. 상도 받고 전시도 했지만 팔리지 않던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작품을 이상봉 선생님이 사겠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답변은 간단했다. ‘불쌍해서 내 샵으로 데려가야겠어요.’ 왜? 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하나? 그렇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계속 하면 되나? 박준상의 물음표는 늘 물음표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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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변증법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에는 분명하지만, 인간이 만든 기계는 자연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순하고 여려 보이기만 하는 사슴의 몸 일부에 박혀 있는 기계 부품은 단순히 자연과 기계 문명의 대립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언제부터 사슴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내게 사슴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다섯 살 때 쓴(?) 첫 연애편지에 사슴을 그렸더군요.”
예로부터 성스러운 동물로 알려진 사슴은 뿔이 난다는 것에 재생의 의미가 더해져 자연을 상징한다. 그리고 기존의 기계 부품을 직접 떼어 달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부품은 기계 문명을 상징한다. 그런데 흙으로 만들어진 사슴의 감성에 품어진 기계 부속의 느낌은 그 자체로 마음에 파동을 그려냈다. 그게 바로 변증법일까? 실제 기계 금속을 붙이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 질문도 꼭 받는 질문 중 하나라며 그가 웃었다. 그래서 실제로 금속을 붙여보고 싶어서 용접도 배웠고, 차라리 박제 사슴에 금속을 붙여볼까 생각해서 해봤단다. 결과는 어땠을까?
“뻔했어요. 지금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았죠. 그래서 제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기로 했어요.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제일 쉬운 소재가 흙이고, 사슴도 실제 사슴이 아니라 제가 생각하는 사슴, 기계 부품도 제가 생각하는 기계일 뿐이죠. 그것이 작가의 능력이고 색깔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슴에만 그치지 않았다. 박준상의 색깔은 코뿔소가 되었다가 캥거루가 되기도 했고, 마치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고 답을 하듯 커다란 코끼리와 작은 새까지 넘나들면서 그의 어깨에서는 조금씩 힘이 빠졌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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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교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좋다고 하는 전시회가 그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결국 박준상은 전시 기간 동안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업을 했고, 전시 마지막 날 완성된 작품인 고릴라를 기어코 갖다 놓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부족했다. 그런데 그의 작품 앞에서 허물어질 벽처럼 서 있던 한 중년 남자가 말했다.“저 같아서 참 마음에 들어요. 힘들어 보이고, 슬퍼 보이고, 그냥 저 같아요. 돈만 있으면 이 고릴라를 사고 싶은데 비싸겠죠.”
고릴라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중년 남자를 보며 저토록 원하시는데 가격을 깎아드려야 하나 박준상은 고민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중년 남자는 박준상을 다시 찾아와 부끄러워하며 자신의 명함과 함께 새로 만든 적금 통장을 내밀었다.
“제가 한 달에 5만원, 10만원도 모으기가 빠듯해요. 하지만 그렇게 모아서 100만원이 모이면 연락 드릴게요. 작가님 작품에 비하면야 정말 낮은 가격이겠지만, 만약 그때까지 고릴라가 팔리지 않았다면 제가 데려가고 싶어요.”
그 후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박준상의 입에서는 이미 팔렸다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끊임없이 흐르고 흐르던, 조금씩 힘이 빠지던 수많은 물음표가 그 자신에게 다다랐다.
“그저 돈으로 사고 파는 게 아니라, 아저씨의 가치와 나의 가치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내가 힘들게 고민하고 생각한 것이 전달이 되는구나 깨달았죠. 작품을 팔아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고, 인정받는 게 전부가 아니라, 이젠 나의 감성을 전달해보고 싶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던 작업실 안으로 차 소리가 다시 스믈거리며 들어왔다. 테이블 위는 그가 인터뷰 중 메모해 놓은 암호 같은 글자와 알 수 없는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저 물음표들이 바로 여기까지 달려온 그의 원동력이 아닐까. 다음 전시회 준비로 이미 머릿속이 가득 차 있는 그를 뒤로 하고 작업실을 나오기 전, 작업실 선반에 물끄러미 서 있는 사슴의 말간 눈과 잠시 눈이 마주쳤다. 연약해서 늘 방황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 뜨거운 가마도 견뎌낸 사슴은 박준상과 많이 닮아 있었다.